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007 살인번호 (문단 편집) == 개요 == '''[[007 시리즈]] 첫번째 영화'''이자 6번째 장편 소설. 1958년 발간, 1962년 영화화. || [[파일:external/images.rottentomatoes.com/DrNoDrNo.jpg]] || || Dr.No(노 박사)는 [[악역]] 이름이다. || UA사의 일본사무실은 제목을 '우리는 의사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해서 포스터와 영화 간판을 만들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번역 실수를 발견하고 폐기했다고 한다[*출처 '영화평론: 007 제임스본드'] [* 이걸 [[KBS]]의 방송 [[스펀지(KBS)|스펀지]]에서 우리나라의 오역 일화로 소개하며 "의사는 필요 없다"로 개봉했다고 잘못 방송한 일이 있는데, 한국은 일본보다 2년 늦게 개봉했고 '007은 살인번호'라는 일본 제목을 살짝 바꿔 썼기 때문에 번역 실수는 생길 일이 없었다.] 수정 후에는 [[:파일:external/jonmwessel.files.wordpress.com/drno_japanese.jpg|'007은 살인 번호(007は殺しの番号)'가 주로 사용되었고, '007 닥터 노(007 ドクター・ノオ)'가 혼용되었다]]. [[:파일:007살인번호_포스터.png|한국에선 1965년 8월 20일 '007 살인번호'로 개봉했다]].[* 한국에선 2편인 '위기일발'이 먼저 개봉한 까닭에 광고에선 '살인번호'를 2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한국어 제목과 맞물려서, 영어 원제 "Dr.No"의 "No"가 번호(Number)와 관계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No"(노)는 극중 등장하는 [[빌런]]의 이름이다. 참고로 중국계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숀 코너리]]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첫 작품으로 정체불명의 조직인 [[스펙터(007 시리즈)|스펙터]]가 최초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007하면 떠오르는 건 베럴이 처음 사용되었다. 첫 작품이라 성공 여부를 보고 원작처럼 만들고자 제작비를 아껴 만들었기에 본드에게 어떠한 특수 장비도 제공되지 않는다. 심지어, [[Q(007 시리즈)|Q]]도 출연하지 않으며 부스로이드 소령이라는 인물이 본드에게 발터 PPK를 갖다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보니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제작비는 1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아주 껌값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당시 제작비로 치자면 꽤나 저예산에 B급 영화였는데, 북미 1600만 달러를 벌어 대박을 거두었지만 평론가들에게 싸구려 액션물로 악평을 당했다. 단지 특수장비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작인 위기일발과 같이 놓고 봐도 한눈에 그냥 알수 있는게, 동원된 해외 로케의 스케일이 일단 다르다. 살인번호는 그야말로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예산 가지고 어떻게든 진행해야 했던 쇼와 특촬물 분위기인데 위기일발은 거의 숀 코너리 버젼 미션 임파서블이다. 작중에서 007이 자메이카로 갈 때 타는 비행기는 [[팬암]]의 비행기였다. 지금보면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 하나. 테마곡은 존 배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몬티 노먼이 작곡한 [[James Bond Theme]][* 원래 실질적으로 따지면 작곡한 사람은 존 배리이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크레딧에 테마곡 작곡가로는 몬티 노먼으로 나온다.] 이후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그 곡 맞다. [[007 시리즈]] 중에서 현재까진 [[007 시리즈/주제가|주제가]]가 없는 유일한 영화다. 이유는 위 제작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110만 달러에 불과한 저렴한 제작비로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섭외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110만 달러는 60년대 [[말런 브랜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당시 A급 톱스타들의 영화 한 편 출연료에 해당할 정도의 저예산이다… 다만 5960만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초대박 흥행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또한 허니 라이더로 출연한 [[우슬라 안드레스]]는 2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64)에서 티피 헤드런과 엘케 좀머와 함께 신인여우상을 받았다.[[http://www.imdb.com/event/ev0000292/1964?ref_=ttawd_ev_1|#]][* 우슬라 안드레스는 이후에 닥터 노 이후로 작품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고 인터뷰했고, 최초의 본드걸인 걸 자랑스러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